동국제강, 철강사업에 집중한다.
[DK BRAND/철이야기] 2019.03.20 14:59


▲동국제강 2대 회장 송원 장상태.


동국제강 2대 회장인 고 장상태 회장은 선이 굵고 활달한 성품을 풍기는 인상이지만, 탐구적이며 예리한 분석력을 가진 최고경영자였다. 당시 장 회장은 국가 중화학발전을 위한 철강 산업 분야의 브리핑을 대통령 앞에서 직접 할 정도였다. 그것은 고로메이커의 건설에 관한 전략이었다.


그런 장상태 회장을 눈여겨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방위 사업을 제안했다. 장상태 사장(당시 직급)은 아버지 장경호 회장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으나 장경호 회장은 난색을 보였다. 다른 기업 같았으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라고 바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국제강 창업자는 불심이 깊어 도저히 방위사업은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석굴암을 방문한 동국제강 초대 회장 대원 장경호(왼쪽).


"우리가 돈을 벌기야 하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쓰는 군수물자까지 만들어가면서 벌 일이 있겠나."

결국 장상태 사장은 방위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대통령에게 에둘러 설명해야 했다. 국가가 주도한 방위사업은 후일 풍산금속으로 넘어갔고 오늘날 풍산은 동제련을 근간으로 한 특수강메이커로 성장하게 됐다 했다.


1960년대 중후반의 이 일화는 동국제강의 창업자 장경호 회장이 1975년도에 별세하기 직전에 사재 30억여 원을 국가에 헌납함으로써 전 국민들에게 자신의 깊은 불심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헌납금은 오늘날의 불교방송이 건립되는 재원으로 쓰였다.


같은 맥락이지만 동국제강이 철강 전문 그룹으로 매진하고 있는 이유도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여 육성발전 시키고, 여력이 있을 때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장경호 회장의 뜻을 그의 아들 장상태 회장의 경영이념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계열 분리하기 이전까지 그룹 내에 여러 철강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었다. 동국제강과 한국철강은 전기로 메이커였으며, 부산주공은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는 주물 분야를 담당했다. 부산신철(한국특수형강)은 소형 앵글과 철근을 수동으로 생산했었다.


▲1972년 한국강업 인수 직후 큐폴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직원들.


동국산업은 자전거 휠과 가드레일에 쓰이는 HGI강판과 건설을 주업종으로 했다. 동국제강그룹의 모태기업인 조선선재는 용접봉과 철선을 생산했다. 동일제강은 와이어로프와 철사를, 부산제철(동국제강에 합병)은 소형 전기로를 운영했다. 연합철강(유니온스틸로 사명 변경 및 동국제강과 합병)은 1985년도에 국제그룹의 와해로 동국제강그룹에 편입된 냉연메이커 이며, 냉연강판과 칼라강판 그리고 강관을 연산 180만 톤 규모로 생산했다. 한국강업은 전기로 이전의 큐폴라 공장을 가동하다가 동국제강에 인수된 이후에 동국제강 인천공장으로 명명되었고, 전기로와 압연 라인을 신설하여 오늘날에는 가장 경쟁력 있는 철근생산 공장으로 성장했다.


그 이외에 현재의 동국제강 신평공장은 용호동에 있던 부산제강소가 폐쇄되면서 포항으로 이전하게 되자 부산지역을 떠날 수 없는 근로자를 위해 영성제강을 인수하여 철근, 앵글, 찬넬 등을 생산하게 했다.


동국제강은 이처럼 국내의 많은 철강기업을 인수 합병한 이후에 적극적인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경쟁력은 공장으로부터 나온다"는 장상태 회장의 경영철학을 해를 거듭해 가면서 정착시켰다. 그리고 이들 기업은 창업자의 아들 6형제 중 4명이 나누어 경영하면서 철강 전문 그룹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동국제강이 64년 철강 종가로서 혁신적인 철강 제품을 만들어 낸 토대가 되었다.


글 : 김 종 대 (철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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