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와 도전으로 만든 중후판 최강자
[DK BRAND/철이야기] 2019.02.14 15:45

 

중후판 제품은 고로메이커들이 생산하는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1971년도 초에 전기로를 가동하는 동국제강에서 중후판 설비를 도입하자 철강업계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중후판은 고로에서 생간되는 슬래브를 원자재로 해야 하는데, 고로메이커가 없는 한국 땅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는 의심과 망할 것이라는 비웃음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크게 환영했다. 당시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따라서 철강재가 부족하여 경제개발의 주체였던 건설토목 분야의 국책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국제강이 중후판을 생산한다고 하니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격이었다.


▲1970년대 부산제강소 후판공장


1971년 2월21일 연산 15만 톤의 후판공장이 부산제강소(부산 용호동)에 준공됐다. 설비는 일본 '오타니중공업'에서 사용하던 중고설비였다. 이 설비는 낙후돼서 휴동 상태에 있었다. 당시 신기술과 설비도입을 책임졌던 장상철(창업자의 4남)씨는 이 설비를 좋은 조건에 인수했다.


도입된 설비는 압연기 즉 스탠드가 1기인 3단 가역식(3High Reversing)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원자재 수급이었다. 예측했던 대로 일본 고로메이커들은 슬래브 공급을 꺼렸다. 부메랑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오타니'의 전기로에서 만든 강괴(슬래브 크기와 비슷한 형태)를 받아썼다. 이것으로 1.5톤~2.5톤 규격의 후판을 생산했다. 그랬으니 생산성이 높을리가 없었다. 후판생산 초기의 생산성 향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후판 압연 과정, 당시 고로 메이커가 생산하는 제품을 전기로 메이커가 생산한다는 것은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었으며, 상업 생산에 성공한 사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동국제강은 154KVA변전소를 운영헀기 때문에 30톤이 넘는 슬래브를 가열로에서 섭씨 1,100로 녹여 6mm 정도의 중후판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건축, 토목, 그리고 선박가공현장에 수요가 넘쳤다.


부산제강소의 후판 생산량은 첫 해인 71년도에 3만8,633톤이었다. 79년도에는 12만9,000톤, 그리고 86년도에는 드디어 연산 30만 톤이 넘는 30만7,721톤을 생산했다. 일본 철강기업들이 낙후설비라고 휴동시켰던 것을 구입해서 부활시킨 동국제강 기술진들의 도전정신은 동국제강에 판재류 생산이라는 또하나의 쾌거를 만들었다.


당시 후판공장의 기술진은 변철규(전 동국제강부사장)대리, 홍승택 대리, 고광덕(전 포항제강소장)사원 등이었다. 고광덕씨는 "연산 15만톤의 설비를 30만 톤으로 증산시키기까지는 두 가지의 핵심 과제를 과감히 개혁하여 이뤘다"고 말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기술진은 설비 스팩 사항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영입된 수퍼바이저는 일본 NKK의 후판공장장을 역임했던 '구니토모'씨엿다. 후판설비는 압연라인을 얼마나 강압화 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증대되는 구조였다. 메인 모터의 파워를 최대치까지 향상시킨 기술진은 다시 출측의 정정라인에서 가장 원활하게 절단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시켜 물류흐름을 완전히 개선시켰다.


▲동국제강 당진공장에서 생산되는 후판제품


이런 증산 노력은 15년 만에 정확히 두 배로 증산되었다. 한국철강에서도 중후판을 생산 했으나 1972년도에 동국제강이 연수했으니 국내 중후판은 동국제강그룹이 우월적 시장지위를 갖고 있었다. 포스코 역시 동국제강보다 1년 뒤에 중후판을 생산했다. 연산 15만 톤의 설비를 합리화 시켜 연산 30만 톤으로 배가 시킨 사례는 동국제강이 처음이었다.


당시 상황을 전 포항제강소장이었던 고광덕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3단 밀(mill)이 들썩 거리고, 볼트 나사가 조금씩 돌아가면 정비팀의 과장과 반장 등이 3단 밀을 깔고 앉아 압연기가 부러지는 것을 막으려고 진땀을 뺐지요. 그래도 '구니모토'씨는 걱정말고 높일 때까지 높이라고 고함을 쳤어요."


▲동국제강 당진공장


부산제강소 후판공장은 1997년 11월말, 부산제강소가 폐쇄되면서 생산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총생산량은 404만8143톤이었다. 이 물량은 초대형 VLCC선박 105척을 만들 수 있으며, 성수대교를 334개나 건설할 수 있는 양이다. 동국제강 부산제강소의 중후판 공장의 성공사례는 후에 포항 1후판, 포항 2후판, 그리고 당진공장으로 이어지면서 동국제강을 명품으로 만드는 '중후판생산 최강자'로 등극시켰다.




글 : 철강 칼럼니스트 김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