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중국과 직교역 물꼬를 트다.
[DK BRAND/제품과 서비스] 2018.12.28 14:43

 

 

중국과 철강 교역이 본격화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이전까지 중국은 한국과 비수교국가였기 때문에 자유 무역이 불가능했다. 당시 동국제강은 인천공장에 준공된 직류전기로 공장(1993.4)과 포항에 1후판공장(1991.6)을 완공하면서 원자재인 고철과 슬래브의 수입 확대가 불가피 했다.

 

동국제강은 원자재의 원만한 수급을 위해 홍콩에 해외지사를 신설하고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커버하면서 본격적인 중국 진출을 위한 창구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88년 9월 13일 동국제강 2층 회의실(당시 3층 건물의 청계초등학교 교사를 본사 사무실로 사용했다. 현재의 페럼타워 자리)에는 낯선 이들의 방문을 앞두고 본사 전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당시 촬영한 기념사진. 첫번째 줄 왼쪽이 장상돈 동국제강 사장, 오른쪽이 왕험 회장.

 

검정색 승용차 3대가 들어서면서 방문자들의 면면은 드러났다. 이들은 비수교국가인 중국의 오금공사진출구총공사 왕험 회장과 일행 8명이었다. 왕회장의 직급은 장관급이었다. 이들을 맞이한 동국제강의 수뇌부는 장상돈 동국제강사장, 그리고 한병주 전무, 권병용 전무, 계열사인 동국산업과 국제종합기계 관계자들이었다.

오금공사는 한자음 그대로 금, 철, 은, 동 등 5가지의 주요 광물을 취급하는 중국의 공기업이다. 왕험 회장은 포항제철을 견학하던 기간 중에 동국제강과의 상호교역 증대 논의를 요청해왔다.

 

오금공사는 동국제강과의 교역확대에 관심을 가졌고, 동국제강은 고철, 원부재료의 수입을 요청하면서 양측은 직교역에 전격 합의했다. 당시 만남은 초기단계여서 양측 대표자의 접촉과 관계 유지, 상호방문과 연락 기회의 확대를 약속하는 수준이었지만 오금공사와의 교류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직교역의 물꼬가 트인 것은 1986년 1월이었다. 당시 동국제강은 상해대외무역부(SHANTRA)와 거래를 하면서 독일상사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 독일상사는 중국의 수입부장 '인란 쓔에삐'를 이웅연 수출부장, 김희년 동국산업 무역부 차장과 미팅할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이 직교역의 시작이었다.

 

당시 중국의 철강 1인당 명목 소비량은 65Kg(선진국은 10배인 650Kg)에 불과해 향후 경제 발전에 따른 철의 수요가 무궁무진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물류 이동거리가 짧고, 엔화의 강세와 반일 강점까지 겹쳤기 때문에 한국의 철강제품을 선호했던 것이다.

 

동국제강은 그룹 차원에서 직교역 합의 이후, 불과 3개월 동안(1988년 12월말까지) 5만2천 톤의 철강 제품을 중국과 직교역 했다. 중국과 직교역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당시 담당자는 "동국제강이 비수교국인 중국에 철강재 직교역 합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수년전부터(1985년) 수백 톤의 철근을 지속적으로 수출하는 과정에 보여준 강한 신뢰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 오금공사와의 교류는 수출시장을 개척해 나아가는 '퍼스트 무버'의 기질을 확인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기업역사이다.

 

 

글 : 김종대(철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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