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히 파업을 하지 않습니다.
[DK BRAND/철이야기] 2018.11.26 17:50

 

▲1994년 동국제강 노조 항구적 무파업 선언식 현장.

당시 동국제강의 국내 최초 '항구적 무파업 선언'은 정재계와 국민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90년대 중반의 문민정부 시절, 전국 곳곳에서는 민주화 물결이 거셌다. 산업체마다 노동쟁의가 빈번했고, 서울 중심지에서는 걸핏하면 연막탄이 터져 업무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그렇게 어수선했던 1994년 2월15일 아침, 서울경제신문 1면 톱기사는 '동국제강 노조 항구적 무파업 선언'이었다.

 

'노조의 권리인 파업권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기사는 전국의 사업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날 오후 2시, 동국제강 부산제강소(현 부산용호동 매트로 시티)에서 열린 '항구적 무파업 선언'결의대회에는 부산지역 언론사 기자 80여명이 몰려들었고, 인천제강소에는 KBS-TV가 단독 취재를 했다.

 

당시 국내 노조는 파업 일변도의 강경세력이 주류였기 때문에 동국제강의 무파업 선언 결의대회는 자칫 어용노조라는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타 방송사들도 KBS의 노사화합 결의대회 뉴스를 그대로 받아 전송했다. KBS는 노조위원장과 인천제강 소장이었던 장세주 전무(당시 직급. 현 회장)와의 인터뷰를 저녁 9시 뉴스에 보냈다. 여타 신문사들은 다음날 노사화합결의대회 기사를 일제히 내 보냈다.

 

산업계는 산업평화의 새로운 이정표라며 일제히 환호했고, 실제로 많은 산업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경련에서는 동국제강의 노사화합 사례를 A4용지 20매 분량으로 정리하여 제공해 달라는 부탁을 필자에게 전해 왔었다. 그리고 일부 대기업들의 노사관계자들은 동국제강의 노사화합을 배우러 무수히 내방했다.

 

당시 노사협력 선언문은 6개항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노조의 항구적 무파업 선언'의 핵심은 노사가 대립관계가 아니며, 노조의 건의를 경영자 시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다음해 5월1일 근로자의 날, 동국제강 서복호 노조위원장과 이학수 전무는 대통령으로부터 '노사평화의 탑'을 받았다.

 

 

▲1980년도 동국제강 노사분규를 실은 언론기사. 당시 폭력사태까지 갔던 파업 경험이 전화위복이 되어 동국제강 노동조합은 회사와 함께 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국제강 노조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 한 것은 1980년도에 공장 건물이 불에 탈 정도로 혹독한 노사분규를 뼈아프게 겪은 끝에 성숙된 일이었다. 당시 부산제강소에는 2,8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고 현장 근무(1980년도) 형태는 8시간 3교대제와 12시간 2교대제였다.

 

농성이유는 근무환경 개선과 임금인상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대규모 불법 농성사태를 보였던 사북탄광사태 이후에 동국제강 부산제강소내에 뿌려진 전단을 보면, "다음 분규는 동국제강"이라고 부축일만큼 외부의 불순 세력이 공장 내에 침투하고 있었다.

 

1980년 4월 28일 밤 10시경, 동국제강 부산제강소의 300여 명 현장 근무자들은 야간작업을 중단하고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농성 요구사항은 임금 40% 인상, 상여금 400% 지급, 공상자 입금 100% 지급이었다.

 

4월 29일 농성자들은 사무실과 계근실(출하품의 무게를 다는 곳)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밤 8시 45분경 거리고 나섰지만 대기하던 기동 경찰 850명과 7대의 소방차가 저지했다. 농성자들은 돌멩이, 쇠파이프, 각목으로 대항했다. 밤 11시 50분경 농성은 해제되고 주동자 8명을 연행, 6명은 구속되고 2명은 불구속으로 입건되었다.

 

 

▲1997년도 동국제강 노조 임금동결 선언 결의대회 현장.

동국제강은 1995년 4월 국내 최초 무교섭 임금 타결을 이뤄냄으로써 바람직한 노사 문화를 정착시켰다.

 

 

"파업을 하지 않더라도 근로자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노사화합을 선언한 서복호 당시 노조위원장(38)의 말은 대규모의 불법 파업이 일어난 지 13년만의 일이다.

 

"잦은 파업 때보다 오히려 파업하지 않고 노사문제를 풀어 나갔을 때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고 했던 당시 서복호 노조 위원장의 말에서는 진정한 노사화합이 보인다. 장세주 당시 전무는 "회사의 경쟁력은 공장에서부터 나온다."며 현장 우선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었다.

 

동국제강의 노사화합은 국내의 여타 사업장에서도 노사화합을 이어지게 했다. 1995년 2월15일 고려제강의 노조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했고, 2007년 4월12일 대표적인 강성 노조였던 코오롱에서도 창립50주년을 맞아 '항구적 무파업 선언'을 했다.

"아버지가 잘해야 자식이 본을 보듯 관리자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족이 화합하지 않으면 가정이 융성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쟁(不爭)의 논리야 말로 바람직한 노사관계 일 것이다. "송원 장상태 회장은 당시 미국 출장길에서 노사화합 결의대회를 뉴스로 접하고 전 사원들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동국인들"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8년 동국제강 임금협약 조인식에서 박상규 동국제강 노조위원장(좌)과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우)

 

전무후무한 동국제강의 '노사화합의 전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임직원들에게 무한한 결속력을 줄 것이 틀림없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가 철강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과격한 노사분규(총격사건으로 노동자 사망)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사화합은 영원해야 한다.

 

<글 김 종 대:스틸프라이스 사장 철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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