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도시의 변신이 주는 교훈] 지구는 녹슬지 않는다
[DK BRAND/철이야기] 2017. 6. 9. 18:36



1997년 3월 한보철강은 부도를 맞았다. 당진에 대규모 제철소를 건설하려던 한보철강은 국가경제에 큰 파문이 일으켰다. 같은 해, 독일 뒤스부르크에서는 제철소가 있던 자리에다 환경공원을 만들었다. 스페인 빌바오도 쇠락한 철강도시 재건을 위해 고심을 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옥동자들이 천덕꾸러기로 내려앉은 그 이후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한보 당진공장은 티센크루프의 기술력을 빌려 고로제철소로 거듭났다. 그러나 독일 뒤스부르크의 티센 제철소와 스페인 빌바오의 철강도시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됐다. 

티센크루프는 독일 철강 산업을 이끈 주역이자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이었다. 인구 50만 명의 작은 도시 뒤스부르크를 먹여 살렸지만 어제의 최강 제철소도 설비합리화를 더 이상 진행 시키지 못해  ‘Closed’ 자막을 올렸고, 주변은 녹슨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뒤스부르크의 티센(Thyssen)제철소가 문을 닫은 것은 1985년.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는 결단을 내린다. ‘엠셔 공원 건축 박람회’를 연 것이다. 친환경 도시 구축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셈인데, 그 덕택에 티센 제철소가 있던 자리에는 뒤스부르크 환경공원(Duisburg landschaftspark)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경건축가 피터라츠는 티센 제철소의 버려진 공장과 그 ‘고철 덩어리’ 그대로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공원 설립 비용보다 고철 처리 비용이 더 들어갈 지 모를 문제는 그렇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60만평에 이르는 옛 티센 제철소의 방대한 공장 건물들이 환경 공원으로 탈바꿈되자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들었다. 높은 굴뚝은 전망대로, 공장 설비들은 강철을 연결해 줄타기 연습장으로, 펄펄 끓던 용광로는 물을 채워 스킨스쿠버장으로, 대형 철재 파이프는 미끄럼틀로, 제철소 사무실은 유스호스텔로, 철광석 저장 벙커는 암벽 등반 코스가 됐다. 물의 공원, 용광로 공원, 부스러기 공원, 철길 공원, 벙커 갤러리 등이 들어섰다.   

 

엔진 공장은 컨벤션 센터로 개조되어 1년 내내 각종 행사를 열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100미터 규모의 가스저장탱크를 다이빙 센터로 만든 곳이다. 뒤스부르크는 제철소에서 잠수복 차림의 사람들이 오리발을 들고 오가는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는 친환경 도시로 완전히 변신했다.         


 



스페인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으로도 유명한 도시이다. 1300년대에 도시가 형성된 이래 약 300여 년간 유럽 상업의 중심 도시로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했다. 서쪽에 철광석이 많아 제철, 제강, 금속 기계 등의 산업이 번성했고, 산업화시대에는 영국 철강수요의 2/3를 공급했다. 당시 스페인 재정의 25%를 감당했던 도시라는 점에서 빌바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빌바오는 199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시당국은 ‘리아 2000’이라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빌바오 시 당국은 구겐하임 재단에 미술관 건립을 권유했다. 시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미술관 건립은 사치”라고 아우성이었다. 


 



1억 달러의 건축비와 5천만 달러의 미술관 운영비를 대기로 한 시당국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게리에게 “누구나 경탄 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혁신적인 건물을 지어 달라”고 주문한다. 구겐하임의 유일한 유산 상속자는 바람둥이로 알려졌지만 평생을 미술가와 연애를 한 덕에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대량 소유하고 있었다. 그 작품을 상시 전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이 문을 열자 빌바오는 단번에 지구별 여행자들이 찾아 드는 명소가 되었다. 개관 3년 만에 4백만 명이 다녀갔고, 이들이 쓴 돈은 5억 유로로 추산되었다. 이를 통해 시가 거둬들인 세금이 1억 유로에 달한다고 하니 이것만으로도 미술관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 아르셀로의 전용 미술관이 있다. 규모 역시 가장 크다. 이곳에는 리차드 세라의 작품 ‘시간문제’가 영구 전시되어 있다. 높이가 4.3m, 무게는 1,034톤이 넘어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7개의 조각으로 펼쳐진 이 작품은 녹슬지 않는 철강재 코르텐 강판으로 만든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양은 구겨진 종이처럼 멋진 메탈플라워지붕과 티타늄으로 조형됐다. 건물 전체의 부드러운 모양은 물고기의 몸을 표현한 것인데 그 옛날 항구도시와 철강도시를 표현했다고 한다. 미술관 밖에도 조각의 거장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6만 송이의 생화로 만들어진 강아지 모양의 ‘퍼피(Puppy)’, 거대한 어미 거미가 알을 품은 모습의 ‘마망(Maman)’, 73개의 은빛 공으로 이뤄진 ‘큰 나무와 눈’ 등이 있다. 이렇게 낙후된 철의 도시를 예술과 낭만이 있는 도시로 바꾼 것을 두고 ‘빌바오 효과’라고 부를 만큼 구겐하임 미술관의 등장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 받는다.

 

철광석에서 탄생한 철이 인간의 생활용품으로 살다가 더 이상 쓸모 없어지면 전기로에서 다시 녹여져 철근과 같은 철강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철강도시가 환경공원과 미술관 같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되는 모습은 지구를 녹슬지 않게 하는 철의 위력 덕분이다. 


한가지 바람을 덧붙이자면 국내 최초로 중후판을 생산한 동국제강의 철강재가 멋진 미술품으로 변신하여 구겐하임과 같은 유명한 미술관에 영구히 자리 잡았으면 하는 것이다. 


글 김종대(스틸프라이스 사장, 철강 칼럼니스트)

 

 

 

  • 염명석 2017.06.12 17:38 ADDR 수정/삭제 답글

    철강도시의 새로운 발견! 역시 철은 예술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찰떡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 박진희 2017.06.14 13:08 ADDR 수정/삭제 답글

    매우 흥미롭네요~ 이런기사는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거 같습니다

  • 황혜진 2017.06.14 23:49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버릴게 없네요 특히나 조명이 짱입니다

  • 김백준 2017.07.18 14:48 ADDR 수정/삭제 답글

    요즘엔 철구조물로 지어진 옛날 공장을 카페로 새로이 리뉴얼하는게 많이 있습니다.
    옛 느낌이 나는 구조물과 엔티크한 인테리어가 조합되니 새롭고 재미있는 느낌이 나더라구요.
    꼭 한번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