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 '성웅 이순신 장군'의 모든 것
[DK PLAY/트렌드] 2016. 4. 27. 08:00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존경하는 위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다가오는 4월 28일은 바로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인데요.  오늘 동국제강그룹 블로그에서는 이순신 장군 탄신 471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 이야기, 이순신 장군 관련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인간 ‘충무공 이순신’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이순신 생가터

 

‘성스러운 영웅’이라는 칭호로 불릴만큼 사람들에게까지 존경받고 있는 이순신은 1545년 음력 3월 8일, 한성부 건천동(現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순신은 충효와 문학을 중요시했던 어머니 변씨의 엄한 교육 아래 성장했습니다.

 

이순신의 본가는 충남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생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같은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유성룡(柳成龍)은 어린 이순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순신은 어린 시절 얼굴 모양이 뛰어나고 기풍이 있었으며 남에게 구속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라치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했으며,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해 어른들도 그를 꺼려 감히 그의 문 앞을 지나려 하지 않았다. 또 자라면서 말 타고 활쏘기를 좋아했으며 더욱이 글씨를 잘 썼다.”

 

 

이처럼 이순신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큰 인물로 성장할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576년 병과에 급제해 처음 관직에 나간 그는 이후 강한 정의감으로 상관과 충돌하기도 하고 모함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인자한 성품을 가지고 있던 이순신은 이후 홀로 남은 노모를 극진히 모셨으며, 부모를 일찍 여읜 조카들도 함께 자식처럼 아꼈습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白衣從軍)’

 

 

1576년(선조 2년)에 이르러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순신은 관직생활의 초기를 순탄치 않게 보내야 했습니다.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造山堡萬戶 兼 鹿島屯田事宜) 시절엔 국경 수비 강화를 위해 군사를 추가로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호인(胡人)의 침입을 받게돼, 부득이하게 몸을 피하게 됐죠. 그의 군사가 너무 적어 그들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데요.

 

하지만 조정에서는 이를 이순신의 죄로만 치부 그를 문책하려 했습니다. 이때 이순신은 처형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후에 중형을 면할 수 있었지만, ‘백의종군’이라는 억울한 길을 걷게 됩니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명량해전과 노량해전’

 

 

1592년 4월 13일(음력)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조선 수군은 1597년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왜군에게 대패하고 맙니다. 결국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됐고, 수군을 정비해 해남군 우수영의 울돌목을 지키게 되죠. 이순신은 수중철색을 설치해 배의 이동을 차단할 준비를 갖춘 채, 왜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9월 16일 전투에서 단 13척의 배로 왜적선 133척 중 31척의 배를 부수는 전과를 올리며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해전에서 이기며, 당시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은 1598년 11월 19일의 ‘노량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절이도와 고금도에서의 연이은 패배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철수 중이던 왜군을 끝까지 추격하는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선두에 서서 싸우던 그는 왜군이 쏜 유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순신 장군은 죽는 순간까지 승리를 걱정했고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결국 전투 중에 눈을 감습니다.

 

잠깐!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아보는 OX퀴즈

※ 정답은 드래그로 확인해보세요! 

 

1/ 이순신 장군은 미국 해군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세계 4대’ 해신에 포함되지 않는다.
   X (포함 된다)

 

2/ 명량해전이 벌어진 울돌목은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는 뜻이다.
   O

 

3/ 이순신 장군은 해전에서 진 적이 없다.
   O

 

4/ 충남 아산에 있는 현충사는 지역의 사당들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O

 

5/ 사후 조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의정 관직을 주었다.
   O

 

 

‘충무공 탄신일 행사’ 일정 소개

 

‘거북선 대축제’와 ‘충무공 탄신 기념 다례’

 

▲ 이미지 출처 – 서울시 홈페이지, 2015년 청계천 거북선 대축제 당시 모습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1주년을 맞아 다가오는 4월 26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그의 고향인 서울 중구에서는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26일 청계천 '거북선 대축제'에서는 청계천 모전교에서 광통교 구간에 12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참가하는 조형 거북선 띄우기 대회가 열렸는데요. 종이나 나무, 스티로폼, 페트병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거북선들이 청계천을 가득 메웠습니다.

 

충무공 탄신일 당일인 28일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기념 다례가 개최됩니다. 제사상 음식 15종이 차려지는 다례 행사에서는 음식의 준비 과정부터 손질 방법 등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또 직접 이순신 장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과 비석치기 등의 전통놀이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네요!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여수 자산공원의 이순신 동상

 

충청남도 아산시에서는 27일부터 28일까지 ‘제55회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가 열립니다. 첫날인 27일에는 17개의 읍·면·동을 상징하는 제등행렬이 펼쳐지는데요. 오후 6시 30분에 온천동 온양온천역을 출발해 아산고등학교 오거리를 지나 온양민속박물관 사거리, 충무교, 곡교천 행사장 구간에 걸쳐 퍼레이드가 진행됩니다.

 

해가 지면 곡교천 캠프장과 세월교 주변에서는 불꽃놀이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 당일 오전 10시에는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위치한 현충사에서 문화재청의 주관으로 충무공 탄신 471주년 기념 다례가 열립니다.

 

나라를 위해 몸바친 충성심과 뛰어난 통솔력, 그리고 지극한 효심까지. 뛰어난 무장이자 훌륭한 사람이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나라가 어지러웠을 당시 나라를 구하는 업적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성스러운 영웅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