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를 탈출한 기차, 하이퍼루프
[DK PLAY/트렌드] 2020. 1. 23. 15:38


과감한 상상은 과학 기술 발전에 중요한 동기입니다. 창의적인 과학기술은 언제나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상상에서 출발하니까요. 이를테면, 철도 없이 달리는 기차 같은 거죠. 


기차는 태생적으로 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동수단인데요. 사실 기차는 처음부터 철도에 맞춰 제작된 이동 수단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기차가 철도를 벗어나는 날은 곧, 기차의 수명이 다했거나, 사고가 났음을 의미하죠. 


그런데 여기, 철도를 탈출한 기차가 있습니다. 기차가 철도를 벗어나자 오히려 더 빨라졌는데요.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떠오르는 하이퍼루프(Hyperloop)입니다. 




하이퍼루프는 진공 튜브 안에서 자기장을 통해 쏘아지는 형태의 신개념 이동수단입니다. 지난 2013년 테슬라의 경영자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제시한 아이디어죠. 사실 하이퍼루프와 비슷한 형태의 이동수단을 100여 년 전에 먼저 제시한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당시엔 ‘진공관 열차’라고 불렀죠. 러시아의 보리스 와인버그 교수입니다. 1914년 발간한 저서 <마찰 없는 움직임>에서 진공관 열차 개념을 제시했죠. 



그 후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고더드(Robert Goddard)도 진공관 열차를 연구했는데요. 고더드는 구체적인 시제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제품이 세상에 조명을 받은 건, 고더드가 죽고 30여 년이 흐른 뒤였죠. 1972년과 1978년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연구원이 고더드의 ‘진공관 열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기사가 나가고 나서야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겁니다. 


진공관 열차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이후부터 다시 박차를 가하는데요. 이 기술의 집합체가 바로 엘론 머스크가 제시한 하이퍼루프입니다. 




하이퍼루프는 두 가지 키워드만 기억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마찰력과 공기저항이죠. 


이동수단의 속도를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마찰력을 줄여야 하는데요. 기차, 자동차 등 육지에서 운행하는 이동수단과 마찰력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마치 기차와 철도처럼 말이죠. 마찰력에 의해 이동수단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마찰력 때문에 어느 정도 속도가 제한되기도 하니까요. 육지 이동수단에서 마찰력은 속도가 나게 해주지만, 제한하기도 하는 오묘한 힘이죠. 마찰력은 이동수단이 최대 속도를 내게 하려면 극복해야 할 힘인 거죠. 


하이퍼루프는 마찰력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합니다. 진공관 바닥에 흐르고,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자석의 성질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죠. 객차를 중심으로 앞쪽에는 당기는 힘이 작용하게 하고, 뒤쪽에는 미는 힘을 발생시키는 겁니다. 마찰 없이도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게 됐죠. 



이동수단의 속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마찰력과 더불어 공기저항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사안입니다. 

하이퍼루프의 최초 이름에서 공기저항을 줄이는 방법을 알 수 있죠. ‘진공관 열차’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객차가 통과하는 튜브를 진공상태로 유지합니다. 애초에 공기가 없으니 공기에 의해 발생하는 저항도 없어지는 거죠. 


마찰력과 공기저항을 받지 않는 이동수단은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이퍼루프를 이용하면 무려 시속 1,200km로 이동할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항공기 보잉 737 속도가 시속 780km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빠른지 가늠할 수 있죠. 




2013년 엘론 머스크가 하이퍼루프를 발표하자 세계 곳곳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하이퍼루프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는데요. 엘론 머스크의 발표는 일종의 트리거였습니다. 하지만 단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경영자가 제시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이슈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하이퍼루프는 장점이 명확한 이동수단이죠. 



하이퍼루프의 최대 장점은 속도입니다. 최대 시속이 1,300km에 달하죠. 이는 서울과 부산을 단 16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속도인데요. KTX보다 4배 빠르죠. 다른 이동수단보다 빠르니 물론 더 비싸겠죠? 이런 생각은 오해입니다. 


하이퍼루프는 기차와 항공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데요. 우선, 진공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은 최대한 작게 만들고, 객차도 28인승 정도로 만들죠. 건설 규모가 작아지는 만큼 건설 비용도 줄어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엘론 머스크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는 구간 하이퍼루프 건설 비용을 60~100억 달러로 예상했는데요. 만약 같은 구간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려면 1,000억 달러에 가까운 건설 비용이 들죠. 건설 비용에서만 어마어마한 돈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이퍼루프는 정비 시간이 짧고 빠른 속도로 인해 잦은 운행이 가능한데요. 약 30초마다 객차를 보낼 수 있죠. 객차는 작지만 잦은 운행으로 많은 인원을 수송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진공관에 태양광, 태양열 에너지 발전기를 부착해 에너지 소비도 적죠. 


노선 작업 비용을 줄이고, 잦은 운행으로 많은 승객을 유치하며,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으로 에너지 비용도 절약해 운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구간을 운영할 경우 기차와 항공기보다 5만 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하이퍼루프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장담했죠. 빠르고 싸고 재생에너지까지 사용 가능한 이동 수단이 바로, 하이퍼루프입니다. 




하이퍼루프 기술은 미국, 일본, 중국, 스페인 등이 선도하고 있는데요. 한국 역시 이들과 함께 하이퍼루프 연구에서 한발 앞서나가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철도기술연구원과 울산과학기술원 등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데요. 최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 중인 하이퍼튜브(HTX)는 이미 2011년 모형 운송체의 튜브 주행 실험에 성공했죠. 


2018년에는 1,000분의 1기압 튜브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하이퍼루프의 핵심 기술 중의 하나인 튜브에서 한국 기술이 두각을 나타낸 거죠. 



울산과학대에서도 지난 2017년 자체 개발한 한국형 하이퍼루프 유-루프(U-Loop)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유-루프 프로젝트에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 기계연구원, 울산과학기술원 등이 협력해 만들어낸 성과물인데요. 


현재는 상용화를 위해, 안정성과 튜브 속 공기압 유지 등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죠. 안정성만 확보된다면 하이퍼루프가 상용화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16분만 걸리는 세상이 온다면,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쉽게 출퇴근 하게 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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