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DK PLAY/트렌드] 2019. 12. 9. 16:02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이하 카네기)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철강 산업을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앤드루라는 실명보다, 철강왕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죠. 아마 철강 산업을 잘 모르는 대중 사이에서는 그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뉴욕 맨해튼의 공연장 ‘카네기 홀(Carnegie Hall)’이 더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가 철강 산업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카네기와 철강 산업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어떻게 철강왕이 되었을까요?




카네기는 1935년 스코틀랜드의 덤프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섬유를 만드는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두 분이 맞벌이했지만, 집안 사정은 넉넉지 않았죠. 1848년, 그러니까 카네기가 13살 되던 해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이민했습니다. 


1860년 미국 남북 전쟁 전후로 많은 사람이 미국에 이민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경제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죠. 게다가 노예 인권 문제 등이 대두되면서 이민자들에게 일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말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했던 시기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카네기는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전보 배달원, 전신 기사 등 어려서부터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죠. 참고로 당시 전보 배달부의 평균 주급은 2달러 50센트였습니다. 그러다가 1853년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철도 회사에 취직하고 7년 뒤,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났죠. 그의 사업가적 기질은 전쟁 중에 발휘되었습니다. 기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자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기차 침대칸 사업 등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투자한 석유회사가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았죠. 카네기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굴을 얻을 것이고

뒤따르는 사람은 굴 껍질을 얻을 것이다.


앤드류 카네기


석유 부자가 된 카네기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합니다.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며 눈여겨본 것이 있었죠. 바로 제철 산업이었습니다. 기차가 교통수단으로 급부상하면서 노선이 꾸준히 연장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량도 많이 지어지고 있었죠. 당시 대부분의 교량은 나무로 만든 목교였는데, 점점 ‘철교’로 교체하는 추세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산업의 중심에는 ‘철’이 있었죠. 


카네기는 석유회사에 투자해 돈을 벌었지만, 미래는 제철 산업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1863년 키스톤 브리지(Keystone Bridge Company)라는 제철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합니다. 이 회사에서는 주로 교량에 사용되는 철을 주문 생산했죠. 사업은 크게 성공했고, 1865년 카네기는 철강 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철도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카네기는 철강 회사에서 기차선로에 사용하던 ‘주철’이 높은 온도에서 쉽게 녹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철은 탄소 함유량 2~6%의 철을 말하는데요. 강철은 탄소 함유량이 2% 이하인 철이죠. 강철은 주철보다 녹는 온도가 높아 선로로 사용하기에 더 적합했어요. 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길고 복잡했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카네기는 1967년에 유니온 제철소를, 1870년에 루시 용광로 회사를 세웠습니다. 루시 용광로 회사에선 제철업계 최초로 화학자를 고용했죠. 제조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강철의 제작 기간과 생산비를 낮추려고 한 것이에요. 그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어요. 강철의 대량 제조 및 유통이 실현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카네기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875년 카네기는 미국 최초의 강철 공장인 에드거 톰슨 강철 공장(J.Edgar Thompson Steel Works)을 설립했습니다. 그 후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생산, 유통을 위해 프릭 코크스 회사 등을 합병했죠. 강철의 원료 공급부터 유통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889년, 카네기는 자신이 가진 회사를 모두 통합한 회사를 설립합니다. 바로 현재 미국 최대 철강 회사인 US 스틸(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의 전신인 카네기 철강 회사입니다. 이후 미국인들은 카네기를 철강왕이라 부르기 시작했죠. 




1850년대만 해도 미국의 철강 생산량은 영국보다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영국 철강 생산량에 약 5분의 1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철강 산업은 영국에서 가장 먼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미 1700년대 후반 영국의 벤저민 헌츠먼(Benjamin Huntsman)이 도자기 제강법을 이용해 순도 높은 철을 제조하는 기술을 발견했죠. 이 방법을 영국의 기술자 헨리 베서머(Henry Bessemer)가 발전시켰습니다. 자연스레 세계 철강 시장에서 영국은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 철강 회사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역전됩니다. 카네기는 베서머 제강법을 도입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당시 베서머 제강법을 도입한 것은 미국 제철업계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했죠. 카네기가 베서머 제강법을 들여온 지 10년 후에서야 미국의 철강회사들이 베서머 제강법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카네기의 시도 덕분에, 미국의 철강 산업 역사가 10년 앞당겨졌다고 하는 말이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1890년대 들어 미국은 처음으로 영국의 철강 생산량을 넘어섰습니다. 그때 카네기 철강 회사에서 담당한 생산량은 미국 전체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절반에 가까웠죠. 카네기 이후 미국의 철강 산업은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절반이 미국 철강이었죠. 




카네기의 철강은 교량과 선로 건설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층 빌딩 건설에 사용될 강철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미국의 초고층 빌딩 시대는 19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카네기가 1919년 눈을 감았으니, 그는 자신이 죽은 뒤의 세상을 준비한 것입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등장하기 전,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던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에는 US 스틸에서 제작한 철강 6만 톤이 사용되었죠. 이 빌딩은 미국의 초고층 빌딩 시대를 연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고층 빌딩의 등장은 도시의 구조를 새롭게 바꿔 놓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고층 빌딩과 아파트는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카네기의 철강은 교통을 변화시켰고, 나중에는 건축과 도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강철을 향한 그의 집념은 여전히 우리 삶의 가장 안쪽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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