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의 원칙을 바꾸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DK PLAY/트렌드] 2019.10.28 10:25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는 미디어에서 언급하는 장밋빛 희망과 달리 현업에서는 그렇게 아름답고 달콤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우려, 어떻게든 변해야 살 수 있다는 회사 안팎의 막연한 긴장감, 낯선 기술에 대한 거부감 등 골칫거리를 잔뜩 남기는 숙제가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접하는 많은 이들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모두 풀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업무에 들어오려면 컴퓨터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프로토콜’의 변화가 필요하다. 바로 ‘디지털’이다. 


단순히 일을 컴퓨터로 하고 있으니 디지털로 전환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마주하는 현장은 디지털과 거리가 멀다.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데이터,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의사 결정, 그 사이에서 으레 일어나는 손실 등 이른바 ‘새어 나가는 자원’은 어마어마하다. 급격히 발전하던 70~80년대에는 그 마저 ‘멋’이었을지 몰라도 저성장이 당연해지는 시대에서는 낭비되는 기업의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보의 가치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업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업무 환경 변화이자 문화와 의식의 변화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의미는 여전히 넓고 막연하지만 당장 우리가 닥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기술적, 개념적인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꼽을 수 있다. 기술, 장비, 솔루션은 가장 마지막 절차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결코 기술 용어로 한정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사람이 경험으로 처리하던 많은 일들을 데이터로 만들고, 이를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분석해서 통찰력을 얻는 것이다.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판단, 결정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직접적으로 효과가 빨리 드러나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예지정비다. 예지정비는 기계 장비가 고장나기 전에 이상 징후를 미리 읽어서 경고 신호를 보내주는 기술이다.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T사는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기업이다. T사는 아시아 지역의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엘리베이터의 유지보수 전문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숙련 엔지니어와 초보 엔지니어 사이의 기술 간극을 좁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T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센서와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엘리베이터의 상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는 안전을 위해 이미 수많은 센서가 들어가 있다. 이 데이터의 로그를 수집, 분석하면 고장의 예후를 파악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적용했다.



딥러닝, 혹은 머신러닝 기술이 가장 잘 하는 부분이 바로 ‘데이터의 분류’다. 하루종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의 작동 상황과 그 안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들이 갖는 평균 범위를 학습하고,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이전의 패턴과 다른 값이 나오면 그 부분을 점검하면 된다. 게다가 경험이 쌓이고 머신러닝 모델이 학습을 이어가면서 특정 센서들의 이상값이 모이면 어느 부분을 수리해야 한다는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예지정비는 그 동안 수 십년을 이어온 사전점검 중심의 관리 시스템을 뿌리부터 바꿔놓고 있다. 복잡한, 하지만 경험이 쌓여서 아주 효과적으로 설계해 온 엘리베이터 점검 순서를 데이터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 되면 알아서 바꿔줘야 하던 부품은 안정성을 바탕으로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고 고장 부위를 찾고 수리 절차를 판단하는 것도 속도와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숙련도에 관련 없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관리 시스템의 기준점이 높아지는 효과를 낳았다. 말 그대로 디지털(Digital)로 운영의 원칙을 바꾼(Transform) 것이다.




데이터는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그 소리에 귀담아 듣는 것이 센서의 역할이고, 의미를 알아듣는 방법이 데이터 분석이다. 컴퓨터가 업무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지난 수 십 년 동안 세상은 데이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 활용에 대한 것은 또 전혀 다른 일이었다. 누구도 분석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데이터는 모이면 가치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만이 강요되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관련 기술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이전의 데이터 중심 비즈니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데이터와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이 구체화되었고 그것만으로도 실제 변화를 겪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왜, 어떤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와 목적 의식을 판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출발점 정도 수준의 기술만으로 놀랄만한 성과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높은 컴퓨터 성능과 새로운 분석 기술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는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오가는 이유다.



동국제강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겪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 라인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동국제강은 올해부터 두 개 공장 라인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기반의 현장 의사결정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H빔의 정확한 무게를 맞추는 것은 품질뿐 아니라 비용 문제로 이어진다. 모자라면 불량이고, 많으면 비용 손실이다. 압출로 뽑아내는 H빔의 무게를 결정하는 방법은 적절한 길이로 자르는 것이다. 그 길이를 결정하는 것은 반복에서 오는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 천 개의 설비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면서 설비 시스템의 상태와 환경, 원자재 공급처의 상황 등 복합적인 데이터가 결합되었을 때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최적의 절단 길이도 결정해 준다.


▲동국제강 가전용 컬러강판 Appsteel


컬러강판 가공에서도 비슷한 방법이 적용됐다. 보통 컬러강판의 소재가 되는 핫코일의 공급처는 수 십 곳에 달한다. 최대한 품질을 맞춘다고 하지만 적절히 가공했을 때 적절한 가로폭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급처마다 품질을 관리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서 잘라내는 핫코일의 양은 곧 낭비되는 비용이다. 그 폭이 1~2mm라고 해도 코일이 길고 가공량이 많으면 그 손실은 적지 않다. 동국제강은 이제까지의 발주 정보와 실제 납품된 제품 사이의 상관 관계를 분석하기로 했고,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주문치를 찾아내고 있다.




간혹 데이터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 자체가 숙제가 되는 경우들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 기술 없는 회사는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식 때문에 막연히 솔루션부터 들여놓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근본적인 변화는 내부에서 데이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데이터의 가치를 찾아내고 업무 프로세스에서 어떤 부분을 디지털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읽어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편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자리를 잡으면서 그 동안 숙련직들이 수 십년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람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이자 도구다.



의료계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자리를 잡으면서 환자들의 임상 데이터를 비롯해 진단, 수술 데이터 등을 수집, 분석하면서 치료 과정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초기 진단에서 디지털은 큰 발전을 이끌어내고 있다. 구글은 당뇨병의 합병증인 당뇨망막변증에 대한 진단을 머신러닝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연구했고, 안저의 사진 한 장만으로 병의 진행 상태를 90% 이상 찾아낼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금도 그 속도와 정확도는 높아지고 있다.


이제까지 이 당뇨망막변증은 의사들이 초기에 진단하기 아주 어려운 반면, 치료는 아주 저렴하고 확실하게 이뤄지지만 제때 진단을 내리지 못해 실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구글의 솔루션을 통해 의사들은 훨씬 빠르고 많은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정확히 진단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의사가 부족한 인도, 중국 등에서 이 기술이 적절히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이 진단 시스템과 진단 성과를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는 병을 찾아내고 치료하는 데에 있다. 적절한 도구를 써서 치료의 적절한 출발점을 찾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병에서 구해낼 것이다. 그 어떤 인공지능도 병을 직접 치료할 수는 없다. 의료의 본질은 사람을 낫게 하는 데에 있고, 데이터와 기술은 그 본질을 도우면서 ‘의료’라는 역할의 본질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멀리 있는 기술이 아니다. 어려운 과제를 푸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현업 여러 분야에서 만나는 적지않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에서 ‘별 것 아니다’라며 머쓱해 하는 경우를 보는데 작은 아이디어와 적절한 기술의 조합이 빚어내는 결과물은 생각보다 큰 성과로 나타나곤 한다. 결국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한 것은 디지털에 대한 사람의 의식 변화에서 시작하고, 그 단계가 가장 어렵다.



글: IT 칼럼니스트 최호섭



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