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법인 탄생 스토리
[DK BRAND/철이야기] 2019.09.06 17:09

 

▲동국제강 미국법인 


동국제강은 1970년대 초에 미국에 첫 사무실을 냈다. 당시 동국제강은 국내 재벌 랭킹 3위에 오를 만큼 사세가 급상승했다. 대외적인 업무도 폭증했다. 정부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걸었기 때문이다. 동국제강의 첫 미국지사(법인) 소재지는 서울과 미국의 항공노선이 연결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사무소장과 직원 2, 3명이 상주했던 초기 시절, 직원들은 주로 고철 검수를 도맡았다. 그러다가 LA에 한-미 직항 노선이 생기면서 사무소를 LA로 이전했다. 동국제강은 1980년대부터 수출량이 대폭 증가했다. 수출입 창구는 ㈜대원사(계열사)가 도맡았다. 대원사가 미국 현지법인을 뉴욕에 설립하자 철강수출입 관련 업무는 훨씬 수월해졌다.     


㈜대원사는 오늘의 동국산업(장상건 회장 계열) 전신이다. 동국산업은 동국제강그룹 계열사였다가 2001년 계열 분리된 기업이다. 무역 중심에서 연산 20만 톤 규모의 소폭냉연 공장을 건설하고 철강제조업에 진입했다.  


 

▲초창기 미국현지법인 직원들


초창기 미국 현지법인 요원들은 동국제강 수출 파트에서 차출한 요원들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대원사 인터내셔널(뉴욕)과 LA 지사 등 두 곳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동국제강 직원들을 중심으로 고철 검수를 맡았고, ㈜대원사는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LA 지사에서 취급한 연간 물동량은 철근 2만 톤, 후판은 3~4만 톤 수준이었다. 뉴욕에서는 일반무역상사의 역할과 로컬 파이낸싱 업무를 추진했다.


동국제강은 1989년부터 수출 확대를 지상 과제로 삼았었다. 1985년 2월 국제그룹의 와해로 인해 동국제강이 인수한 연합철강의 수출 물량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미국 현지법인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미국 현지법인은 나중에 연합철강 미국법인을 합병하고, 열연, 후판, 냉연, 칼라강판 등을 대상으로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대원인터내셔널이란 명칭을 써왔지만 1988년도 이후부터는 동국인터내셔널로 바꾸었다. 미국 현지법인은 외형 실적이 1억 달러를 넘어섰다. LA와 연합철강 지점을 합쳐 2억 달러에 달했다. 업무영역도 글로벌화되었다. 미주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 중남미, 동남아 등으로 확산시켰다.


뉴욕과 LA 현지법인은 인천공장의 직류 전기로 준공과 포항 후판공장의 증설로 발생되는 철강재를 수출하기 위한 전략 등의 이유로 후에 합병된다. 이후로 미국 현지법인은 각 계열사의 프로젝트 추진과 원자재 공급, 동국제강그룹 생산 제품의 수출입, 금융개발, 현지 투자 등 다양한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시켰다. 



동국제강이 미국으로부터 매년 고철을 구매하는데 따른 철저한 품질검사와 안정적인 물량 확보는 또 다른 동국제강의 파워이다. 그 파워를 활용하여 동국제강은 브라질에 CSP 제철소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전략과 추진력을 발산시킬 수 있었고, 중심에 미국 현지법인의 지극한 노력은 동국제강의 역사 속에 잘 스며들어 있다. 끝. 




글: 김 종 대 <철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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