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는 마녀가 만든 도구?
[DK BRAND/철이야기] 2019.08.27 19:05

 


포크의 역사는 11세기를 기준으로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포크가 없었다. 유럽인들 모두가 오래전부터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한 식사를 했을 것이란 추측은 허상이다. 게다가 아주 오래전의 유럽인들은 4세기부터 젓가락을 사용한 동아시아인들보다 더 천박한 식사를 했다.


한마디로 오래전의 유럽에는 포크가 없었다. 자급자족 형태의 생활이었으므로 포크를 사용할 만한 음식이 없었고, 묽은 죽과 빵이 고작이었다. 그 음식을 숟가락과 손으로 먹었다. 


유럽인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던 시대에는 더러워진 손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식탁에 물 그릇을 놓는 것이 필수였다. 지금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핑거 볼(finger bowl)은 당시 유럽의 수식(手食)문화를 짐작하게 하는 살아 있는 화석과 같은 물품이다.


포크가 등장한 것은 동방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으로 포크가 등장한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그러나 이 포크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기독교인으로부터 악마의 물건이라는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음식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신의 은총인데 그것을 포크가 빼앗아 갔다”는 종교적 이유로 포크는 사라질 뻔했다. 당시의 시대적 환경은 그럴 만 했다.    



11세기의 유럽은 이슬람 셀주크 왕조가 예루살렘을 장악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했고, 비잔티움 황제는 서유럽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시기였다. 200년 동안의 십자군 전쟁을 말한다. 당시는 종교가 대중들의 생활습관을 지배했다. 생활환경 어느 것도 종교적 색채가 거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누군가는 삼지창같이 생긴 포크를 보고 “마녀가 만들어낸 도구이자 이교도 신의 삼지창이다”라고 역설적으로 웅변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포크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보다 훨씬 위생적이어서 유럽 전역으로 물밀 듯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유행이 탄생했다. 



각양각색의 포크 담는 통이 상류 계층에서 번졌다. 포크를 보석과 진주로 치장했다. 포크는 어느새 귀족들의 사치 놀이가 되었던 것이다.   


포크가 대중화된 것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철의 생산이 증가하면서부터였다. 일반 대중들은 부잣집의 사치스러운 포크를 선망하다가 포크가 대량 생산되자 너도나도 사들였다. 포크가 전 세계 식탁을 잠식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우리의 식탁에도 포크는 자주 등장한다. 음식문화가 서구화되면서 포크는 이미 대중화됐다. 특수강으로 만든 포크와 스테인리스로 만든 나이프 등 자연스러운 식기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연인과 멋진 레스토랑에서 양식을 즐기는 식탁에는 ‘좌측에는 빵, 우측에는 물’을 사이에 두고 백색의 고상한 도자기 그릇에 담긴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식사하는 풍경은 소중한 추억이 된다. 


철강 산업의 등장으로 인해 대중화된 포크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의 사물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과 사회현상, 그리고 사람들의 인기를 받아야만 탄생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글 김 종 대<철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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