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북항에 '회 센터'가 들어섰다면
[DK BRAND/철이야기] 2019.08.23 12:46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매우 중요한 포지션을 담당한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 생산 공장이 있다는 것은 영업과 물류에서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이 공장은 원래 한국 강업의 소유였으나 동국제강이 1971년도에 인수하여 인천공장으로 만들었다. 

 

5톤 규모의 작은 큐폴라이었던 인천공장은 해를 거듭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지금은 100톤 직류 전기로와 연산 120만 톤 에코아크 전기로를 보유한 철근 전문공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1971년 이후로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을 정도로 동국제강의 캐시카우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동국제강 인천공장 


하지만 90년대 말까지 인천공장에는 약 8~10미터 폭의 바닷물이 마치 시냇물처럼 공장 안으로 흘러 들어왔었다. 인천공장 관리팀은 썰물만 되면 들어오는 바다 물길 때문에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인천공장의 북항 개발 청사진은 1997년에 완성했다. 주요 골자는 해안을 접한 인천공장의 지도를 바꾸고 전천후 물류거점 기지로의 새로운 도약을 꾀한 것이다. 이 사업은 사회간접시설 확충과 민간자본 투자가 맞물려 이루어졌다. 결국 북항 개발은 2003년 초에 착공하여 2006년 10월 말까지 약 4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을 볼 수 있었다. 


북항 부두 사업은 철재부두 5만 톤 급 선석과 배후부지 매립이 골자였다. 이 부두가 완료되면서 인천공장은 최장 50년간 무상으로 부두를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정부 측에 기부체납하게 되어 있다. 


▲북항부두에서 수입고철을 하역하고 있는 모습


부두가 완성되자 인천공장은 수입 고철을 북항에서 직접 하역했다. 그동안은 인천항 제8부두를 통해 하역을 한 다음, 다시 육상 운송을 통해 인천공장까지 운송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육상 운송을 통한 교통체증 해소, 공해 관련한 민원 해소, 물류비 감소를 직접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인천공장은 신항만과 인접한 델타형의 배후 부지를 동국제강이 매립함으로써 매립지를 부두와의 연결통로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천공장을 가로지르던 총 연장 460미터의 하구 복개공사도 완료시켰다. 악취해결과 사내 주차공간도 마련했다. 현재 인천공장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곧게 뻗은 시원한 도로가 바로 복개된 장소이다.  


인천 동구청은 원래 북항 부지를 다른 목적으로 추진했었다. 인천 동구청은 이 지역을 매립하여 월미도와 같이 1만 5천 평 규모의 ‘회센터’를 유치할 계획이었다. 동부발전 5개년 계획에 ‘회 센터’ 유치를 포함했던 것이다.  


사업 추진도 거의 막바지 단계였다. 서울국토관리청과 해양수산부 인천지부와 해운항만청 등과 이미 협상이 다 이루고 있었다. 1억 5천만 원을 들여 설계를 마쳤고, 허가 직전이었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인천공장 관리팀은 인천시와 동구청에 부두 조성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북항부두에 첫 선박이 입항한 것을 축하하는 동국제강 임직원들


고철 부두를 만들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발휘하여 18개 선석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14개는 목재 부두이고 나머지 4개 부두는 고철 전용 부두로 만들어 인천제철이 3개 동국제강이 1개의 선석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5만 톤 급과 1만 5천 톤 급의 선박이 동시 접안 가능한 북항 개발은 인천공장의 고철 하역과 물류 이동, 그리고 원자재 적재를 용이하게 만든 중요한 사업이었다. 만약 북항 부두 자리에 ‘회 센터’가 들어섰더라면 연산 22만 톤의 봉강 생산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전해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 센터’ 유치는 백지화되었지만 인천공장으로서는 식은땀 나는 상황이었다. 


글 김  종  대(철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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