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핫 히스토리>삼화제철 인수역사
[DK BRAND/철이야기] 2018.03.30 12:58


동국제강의 기업 역사 속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지긋이 숨어있다. 남한 최초의 일관생 산체제 구축, 전기로 최강기업의 성장 비사, 바다를 메워 현대적인 철강공장을 건설한 대역사, 피아트 자동차를 생산하던 계열사 이야기, 미국산 철 스크랩 외상 수입했던 흥미로운 야사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동국제강의 숨은 이야기를 <핫 히스토리>에 연재한다.


  

남한 최초의 고로메이커가 삼화제철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 삼화제철은 1973년부터 18년 동안 동국제강의 계열기업이었다. 삼화제철은 무연탄을 연료로 소형용광로에서 선철을 생산했던 남한 최초의 제철소를 말한다.


소형용광로 제철소는 대형 고로에 비해 원가가 높고 생산능뉼이 떨어졌지만 일제는 2차 세계대전이 불리해지자 한국과 중국, 몽골, 북해도, 대만 등에 소형용광로를 설치하여 군수품을 공급하려 했다. 삼화제철은 그 계획아래 탄생된 철강기업이었다.


삼화제철의 전신은 고레가와제철(1934년)이다. 투자의 신으로 불렸던 일본인 고레가와긴조가 처음 설립했지만 공장을 다 짓기도 전에 해방이 됐다. 탄생부터 무리했던 고레가와제철은 삼화제철 공사로 공영화됐다가 민영화 이후에 여러 기업을 거치는 운명을 맞는다.


▲ 사진 출처 : 대한뉴스 제 333호

  

고레가와제철-삼화제철공사-삼화제철-범한무역(설도식)-동국제강(장상태)-대동건설(아파트건설로 1991년 고로 해체)로 소유권이 넘겨지고, 폐기 직전에 포스코에서 소형고로 1기를 매입하여 포스코 박물관에 영구 전시를 끝으로 삼화제철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의 행간 속에는 정부의 끈질긴 철강산업 육성과 동국제강의 고로진출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다.


▲ 사진 출처 : 대한뉴스 제 333호


1961년 9월 23일, 삼화제철소는 제3용광로 기화식을 가졌다. 첫 불을 지핀 사람은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이었다. 군복을 입은 박정희 의장은 소형 용광로에서 잉코트 방식으로 쇳물이 흘르더는 광경을 지켜본다. 이후로도 박의장은 동국제강, 연합철강, 인천제철, 한국철강 등 구내 철강공장들을 자주 방문하면서 종합제철소 건설 구상을 구체화 시킨다.



삼화제철의 생산 능력은 하루 평균 30톤이었다. 중단된 5고로까지 가동해도 선철 생산량은 월 3,600톤에 불과했다. 1945년도에 남한에서 생산된 선철이 13만 9,000톤이었음으로 삼화제철소의 소형고로도 매우 빈약했음을 알 수 있다. 삼화제철소의 기회식이 있고 1년 후에 동국제강은 부산 용호동에 대규모 철강공장을 착공한다.



동국제강이 삼화제철소를 인수한 시점은 1973년 10월이다. 동국제강은 1972년에 인수한 한국강업(동국제강 인천공장)의 규폴라 공장과 한국철강(동국제강 계열사에서 분리) 마산공장의 전기로 공장, 그리고 부산제철(동국제강 계열기업)의 소형고로 등을 동시에 가동하면서 제선, 제강, 압연의 일관생산체제를 갖춘 국내 최초의 철강기업이었다.


그러나 동국제강은 1966년에 15톤 전기로 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초의 전기로 시대를 열면서 삼화제철의 고로를 개수, 소결원료인 생석회공장으로 활용한다. 이 시기는 동국제강의 모든 생산체제를 전기로 방식으로 일대 전환하는 시점이다. 18년이 지난 1991년도에 삼화제철은 대동건설로 매각되고 삼화제철 부지에는 아파트가 건설되고 만다.


당시 동국제강은 생산시설의 확대를 통해서 제선, 제강, 압연, 수동 등으로 끊임없는 수직다각화를 이뤄 국내 최초의 철강전문기업진단을 완성했다.


이 같은 역동적인 기업성장은 동국제강이 1970년대 초반까지 베트남 전쟁 특수로 엄청난 물량의 철강재를 수출하여 제계 3위권으로 도약했던 시기였음으로 대형고로메이커가 되려는 의지도 강하게 추진했었다. 1978년도에 인천제철 민영화 입찰에 참여한 것도 이때 이뤄진 일례이다.


1980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국제강은 전기로의 단계를 넘어 고로메이커로의 성장을 모색한다. 장상태 회장(2000년 4월 작고)은 기술진을 대동하고 직접 매물로 나온 해외 고로메이커를 방문하여 인수협의를 하거나 베네수엘라 등에 새로운 고로제철소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사업 다각화는 철강의 최강자가 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했던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꿈은 오직 '고로메이커'였다. 2016년 6월 10일, 브라질 동북쪽 빼쌩공단에 위치한 CSP제철소에서는 용광로 화입식을 거행했다. 동국제강 장세욱 부회장은 용광로에 불을 붙였다. 동국제강이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로메이커가 된 순간이었다.


브라질 CSP제철소는 사업 추진 15년만의 완공이며, 1966년 소형 용광로를 가동했던 이후로 50년만에 이뤄진 대역사이다.



큐폴라 공장과 20톤 규모의 소형용광로에서 하루 1~3톤에 불과한 선철을 생산했던 그 옛날의 동국제강은 이제 연산 1000만 톤의 철강재와 연산 300만 톤의 슬래브 원자재를 생산하는 명실상부한 고로메이커로 등장한 것이다.


동국제강은 삼화제철소를 대형고로메이커로 육성 시키려 했지만 기술적 한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늘 혁신을 앞세워 가장 경쟁력 있는 기술공정이 무엇인가 직접 가동해보고, 과감히 신기술에 도전해온 "스틸 퍼스트 무버"였음을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글: 김 종 대(스틸프라이스 대표, 철강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