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엔지니어의 집념으로 건설된 ‘하버 브릿지’
[DK BRAND/철이야기] 2017.11.23 11:42

 

어린 아이가 침대 위에서 뛰어논다. 세월이 지나고 침대의 녹슨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도심한편에 세워진 우체통으로 장년의 신사가 다가선다. 편지를 넣고 흐뭇한 표정은 짓는다. 우체통은 서서히 녹슬어 간다. 다시 승용차 한 대가 유럽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먼지를 일으키며 정차한다. 연인들이 차에서 내려 밝게 웃음꽃을 피운다. 그러다, 승용차도 폐차 직전의 모습이 되어간다. 파이널 장면은 합창단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엄청난 크기의 지구본을 굴리며 평화롭게 놀다가 지구본을 하늘 높이 날리며 함성을 지른다.  


▲ 시드니 하버 브릿지를 배경으로 한 동국제강의 TV광고 촬영 현장  

지구본 사이로 보이는 배경에 하버 브릿지 교량이 등장하면서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른다. 화면에는 ‘지구는 녹슬지 않는다’는 자막이 클로즈업된다. 

2004년 7월7일, 동국제강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방영한 기업PR영상 광고의 내용이다. 회사 창사 이래 처음으로 동영상 광고를 촬영한 장소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하버 브릿지 인근이었다. 

항구 도시 시드니의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한 하버 브릿지의 아치는 한 폭의 수채화다. 반 타원형의 웅장한 철 구조물로 건설된 하버 브릿지는 올해로 85살이다. 이 다리는 한 엔지니어의 집요한 노력 끝에 완성되었으며, 매년 1,000만명(760만 내국인 270만 외국인)의 발걸음을 시드니로 안내하는 명물이다. 


▲ 시드니의 브래드필드 하이웨이(Bradfield Highway)

시드니시 당국은 설립자 존 브레드필드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하버 브릿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브래드필드 하이웨이’로 이름 지었다. 시드니 항의 북과 남을 잇는 다리 건설의 제안은 19세기 초반에 시작됐다. 1815년, 건축가 프란시스 그린웨이는 당시 총독이었던 라첸 맥과이어에게 다리 건설을 처음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5년이 지난 1840년에도 건축가 로버트 브랜드리는 부교(Floating Bridge)를 제안했고, 1879년에는 트러스트교가 제안되었다. 1900년에는 다리를 어떻게 건설 할 것인지 공모전까지 열렸으나 실제로 건설에 착수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는 미국의 US스틸이 탄생(1902년)하여 철강재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즈음이며, 한 해 전(1901년)에는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야하다제철소가 첫 고로에 불을 붙여 세계 철강산업이 기지개를 켜던 시기였다.   


▲ 하버 브릿지 건설의 책임자였던 존 브래드필드(John Bradfield)  

하버 브릿지의 본격적인 건설은 1912년이었다. ‘교량의 아버지’로 불렸던 존 브래드필드는 하버 브릿지의 책임 엔지니어로 임명되자 교각이 없는 캔틸레버 교량을 제안한다. 호주 하원은 찬성표를 던진다. 그러나 상원은 달랐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전쟁에 쓰는 것이 낫다”고 반대한다. 당시 세계는 제1차 대전 중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하버 브릿지 건설은 다시 시작된다. 1921년 존 브래드필드는 미국 헬 게이트 브리지(Hell Gate Bridge)에서 영감을 얻어 단일 아치교를 설계한다. 이 설계를 랄프 프리먼이 보완하고, 영국계 건축 회사 ‘도만 롱’(Dorman Long)에 의해 비로소 하버 브릿지는 건설을 시작한다.     


▲ 하버 브릿지를 건설하고 있는 모습 

공사가 시작되자 하버 브릿지 북쪽 해변의 민가와 상업건물(470개)은 철거된다. 아치의 설치는 공사 1년 만에 완성된다. 버티컬 행어가 아치 본체에 부착되고, 1931년 6월에 상판 작업이 완료되자 하버 브릿지는 위용을 드러냈다. 1932년 3월 19일 하버 브릿지는 대중에게 개통되기에 이른다.  

 하버 브릿지에는 8차선으로 된 도로(두 차선은 전에는 전차 선로였다), 두 개의 철로, 보행자 도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전체 길이는 1,149m이다. 해면에서 도로까지의 높이는 59m. 싱글 아치 교량  중 세계 두 번째로 긴 다리이다. 하버 브리지의 또 하나의 흥미는 구조물 꼭대기까지 오르는 등반이다. 교량의 난간에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두었던 파리의 다리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   

▲ 하버 브릿지를 지나가고 있는 열차와 행인들 

하버 브릿지는 아치교이다. 아치교는 교량 구조를 곡선 모양으로 만들어 주위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을 말한다. 아치교는 현수교와 사장교 다음으로 지간을 길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계 최대의 아치교는 미국 뉴욕의 킬밴컨교(504m)이다. 한강철교도 하버 브릿지와 비슷하지만 정식명칭은 타이드 아치교(Tied)이다. 

시드니 하버 브릿지는 길이 503m, 너비 49m에 정점이 134m 높이로 솟아 있는 단일 구간 강철 아치교로 이루어져 있다. 더운 날이면 강철이 팽창하기 때문에 높이는 최대 180mm까지 늘어난다. 

다리건설에 사용된 강철은 3만9,000톤이다. 철강재는 대부분 영국 미들러스에서 공수되었고, 일부는 호주 국내에서 조달되었다. 다리의 중량은 5만 2,800톤이다. 손으로 박은 리벳은 600만개에 이른다.  


▲ 하버 브릿지의 마지막 블록을 설치하고 있다. 

이 다리의 도색은 필수이다. 초기 도색에는 27만 2,000리터의 페인트가 소요됐다. 이후로도 하버 브릿지는 한 번 도색할 때마다. 3만 리터의 페인트가 소용된다. 건설하는 동안 16명의 작업원이 목숨을 잃었다. 2명은 바다에 추락했다. 청력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공사비는 625만 호주 파운드가 소요됐다. 

 이 대금은 바로 지급되지 않고 관광수입과 통행료를 거둬 개통 56년이 지난 1988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상환되었다. 개통 80주년에는 금관악기 연주자 11명이 해발 134m 높이의 하버 브릿지 구조물 꼭대기에서 소수의 관중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었다.  


▲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의 야경 

시드니의 명물 하버 브릿지, 파리의 명물 에펠탑,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골든 브릿지. 서울의 명물은? 즉답이 어렵다. 철강재로 만든 구조물이 선뜻 한국의 명물이라고 얼굴을 내밀기를 기원한다. 


글•김종대(스틸프라이스 사장, 철강 칼럼니스트)


  • 박진희 2017.11.24 10: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또하나의 철강 역사를 알게 되었네요

  • 김백준 2017.11.24 11: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동국제강 TV 광고도 촬영을 했었군요. 한번 가보고 싶네요 ㅎㅎㅎ

  • 염명석 2017.11.24 17: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굉장하네요~ 이런 엔지니어의 집념을 꼭 배워야 하는 포인트라 생각하네요~

  • 황혜진 2017.11.27 09:2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꽤 오래된 다리에도 불구하고 ... 너무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