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匠人)이라 불리는 뛰어난 기술과 미감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철과 금속을 다루는 솜씨가 으뜸인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철과 함께 했던 삶과 열정, 그리고 성공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첫 만남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임인호 장인과 함께 했습니다. 


금속활자장, 그러니까 전통 금속활자를 만들어 내는 장인인 그는 현재 청주 고인쇄박물관 내 금속활자전수관의 관장으로도 재직 중입니다. 청주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물이자 우리의 금속활자 제작 기술을 세계에 증명한 ‘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죠. 전통 방식의 금속활자 주조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평가입니다. 




원래 1984년부터 목판에 글씨 새기는 서각을 해 오다가 1996년 제1대 금속활자장이었던 오국진 선생을 스승으로 만나면서 그의 삶은 새로운 길을 따라 가게 됩니다. 목판 서각을 하긴 했지만 큰 묘미를 못 느꼈던 당시, 스승과의 만남은 어떤 희열감을 맛보게 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타계 후 제2대 금속활자장에 오른 그는 지금까지 아무런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전통 금속활자 주조법을 찾아 내며 금속활자 복원과 제작에서 큰 업적을 거두어 왔습니다. 직지심체요절 상·하권 3만 자 가운데 5천여 자 이상을 복원하였고, 조선의 금속활자인 계미자와 경자자, 병진자, 한구자 등 숱한 금속활자들이 되살아 났습니다. 물론, 절로 이루어진 것은 어느 하나도 없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들려준 금속활자와 지난 삶의 여적은 어떻게 ‘장인’이 탄생하고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지 많은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금속활자 주조가 갖는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요? 

  나무와 금속은 그 소재가 주는 특징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금속활자는 쇳물을 주물에 붓고 갈아 내어 완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변형이 생기죠. 쇳물이 굳으면서 두 세 차례 정도 원래 주물보다 줄어들고, 완성 후 활자의 윗 부분을 곱게 갈아주다 보면 오히려 넓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통 방식에 따라 금속활자를 만들 때는 이 축소와 확대의 비율까지 세밀히 계산해야 하죠. 장인은 이를 정확히 가늠해 내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이렇듯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은 기분이 금속활자를 만드는 어려움이자 동시에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금속의 소재를 전통 방식으로 다뤄 활자를 만드는 데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직지심체요절을 만든 금속활자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스승께서도 저도 여러 사료를 파헤치고 전통 방식이 무엇일지 끝이 없을 듯한 연구에 매달렸어요. 여러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전통 금속활자 주조는 모래와 밀랍을 이용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찾아냈습니다. 아무래도 선조들은 주변의 천연 재료를 활용했을 텐데,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과 얻기 쉬운 재료여야 했을 텐데, 그럼 뭐가 있을까 하고 당시 그 분들의 심정으로 돌아가 생각하기를 무한 반복한 결과였죠.

쇳물이 굳은 후에도 뒤틀어짐 없이 직지심체요절의 서체 그대로를 유지하는 활자를 한 자 한 자 완성해 가며 시행착오와 좌절도 많았죠. 그게 뭐 그리 어렵나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현대식 활자 주조법으로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니까요. 그러나 청주에서 발견된 직지심체요절은 벌꿀을 이용한 밀랍으로 주물을 만들었는데, 이 천연 재료로, 옛 선조의 방식 그대로 복원해야만 의미가 있었어요. 이제는 만들고 싶은 글자 수만큼 만들어 낼 기술을 쌓았지만, 복원 당시만 해도 한꺼번에 15자 이상 만들어 낼 재간이 없었어요. 

그만큼 금속은 까다로운 재료이지만, 또 매력적입니다. 모래로 거푸집을 만들면 모래 속에 틀을 갖추고 들어 앉은 글씨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어요. 여기에 1,200℃의 뜨거운 쇳물을 부어 원하는 글자가 만들어졌을 때의 성취감은 지금껏 이 일을 후회한 적 없는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밀랍 주조는 그 나름의 매력이 또 있어요. 모래 주조와 달리 글씨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은 채 쇳물을 부어야 하기 때문에 기다림은 더 길고 긴장되죠. 그만큼 성취감이 큰 게 당연하고요. 





  매주 금속활자전수관에서 손수 주물을 만들고 쇳물을 붓는 등 금속활자 주조 시연을 진행하는데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까요? 

  생각보다 아주 좋습니다. 신기해 하는 반응을 넘어 우리에게 이런 문화가 있었다는 데 감동 받고 뿌듯했다는 말씀 많이들 하시죠. 그런 반응이 반가워서, 그리고 관람 오신 분들의 요청이 이어져서 현재 매주 금요일과 매월 첫째 토요일 하루 세 번으로 시연 횟수를 늘렸습니다. 직지심체요절과 우리 금속활자의 우수성을 배우고 돌아가는 분들의 모습은 큰 보람입니다.  





  금속활자 주조 기술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걱정이 앞서는 건 사실입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일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딱히 수입이 생길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정부나 공공기관의 도움에만 의지하면 이 기술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고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계승자가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2대 장인으로 금속활자의 복원과 재현에 인생을 바치면서 돈과 명예는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이 오로지 금속활자에만 매달렸어요. 그런데 이제 이 전통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이 큽니다. 역사적 가치는 인정을 받았지만 제대로 3대, 4대로 이어지려면 사업화의 길이 절실합니다. 





  전통 금속활자의 가치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말씀 바랍니다.

  우리 전통 금속활자는 분명 현대의 그것보다 재료와 기술에서 뒤떨어집니다. 그러나 황토와 모래, 물, 밀랍 같은 천연 재료만으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은 현대의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천연 재료들의 배합 비율이 정확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활자가 만들어지거든요. 그 기막힌 배합을 찾아 내고 수 만자를 만들어 낼 만큼 우리 조상의 기술은 위대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것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성능과 수준은 과거의 것들이 더 좋았다고들 말하죠. 예전엔 대량 생산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요. 성능이 조금 떨어져도 많이 만드는 요즘과 달리 현대의 기술로 측정할 수 없는 장인의 정신과 혼이 담긴 소량의, 정성 들인 물건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 셈이에요. 

과거의 문화, 지나간 문화라고 덮어두지 말아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옛 것이 가진 혼과 우수한 면모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과거의 문화를 국민들이 사랑해서 끊어지지 않도록 가치를 승계할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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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혜진 2017.06.14 23:5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나라 금속활자는 정말 대단합니다 계승이 계속 되길바랍니다

  • 염명석 2017.06.15 07:1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금속활자 주조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장인 너무 자랑스럽네요~ 새것도 좋지만 고유의 우리의 것을 이어가는 정신! 이 또한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