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분당선 태평역 1번 출구로 나와 30m쯤 걸었을까요? ‘충북철공소(대장간)’라 적힌 커다란 간판이 눈길을 끕니다. 바로 옆에는 아기자기한 카페가 있고, 바로 앞으로는 10차선 대로가 시원스레 뻗어나가는 곳. 대부분의 대장간들이 도심에서 비켜 있는 것과 달리 충북대장간은 역세권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손님도 제법 많습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낫을 찾거나 닳아빠진 건축공구를 연마하러 온 사람들로 아침부터 대장간 문턱이 분주합니다. 정형구 사장은 불꽃이 벌건 화덕 앞에서 철근 갈구리(공사 현장에서 철근을 엮을 때 쓰는 도구)를 담금질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일을 처음 배운 때가 1995년쯤이에요. 장가를 들었는데 장인어른이 요 근처에서 대장간을 하셨죠. 직장이 쉬는 날이면 처가에 놀러 왔다가 일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어느새 대장간 일이 손에 익어버리더군요. 그러다가 아버님의 병환에 자연스럽게 제가 대장간을 물려받게 된 것이 2001년이에요.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듯이 화덕 앞에 앉게 된 것이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네요.”





그렇게 시작된 늦깎이 대장장이로서의 삶은 꽤 만족스러웠다고 합니다. 저렴한 중국산 철물이 쏟아져 나오며 전과 달리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A/S와 맞춤제작이 필요한 건축공구 분야에서는 수요가 많았던 것이죠.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대장장이였던 장인어른에게 배운 솜씨는 금세 입소문으로 퍼졌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어났습니다. 최근엔 망치질 소리로 인근 상점의 불만이 높아 경기도 광주에 작업장을 따로 마련해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대장간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좋다는 성남 시민들을 만날 때면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한(?) 대장장이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사건이 발생했죠. 바로 2008년 숭례문 화재였습니다. 

“당시 복원 작업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고도 시간이 없어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개인적으로 현장에 찾아갔다가 한옥 철물들을 보고는 관심이 생겼어요.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육원에 등록했고, 2013년에는 문화재청에서 발급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자격증(철물공)을 땄어요. 이후 단원 김홍도의 그림 <대장간>을 바탕으로 옛 화덕을 재현하는 사업에 참여했고, 매년 9~10월 부여 및 공주에서 열리는 ‘백제예술제’에서 전통 대장간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충북대장간 벽면엔 문고리, 경첩, 띠쇠, 광두정(머리가 넓은 못), 마름쇠(한옥 처마에 새들이 앉지 못하게 하는 오지창) 등 한옥 관련 철물들이 그득합니다. 쇠와 쇠를 붙이는 방법으로 요즘의 용접이 아닌 전통 방식의 단접(두 금속의 이어 붙일 부분을 녹는점 가까이 가열한 다음 망치로 두드리거나 눌러서 접합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는 대장장이이자 문화재수리기능자인 정형구 사장의 열정이 화덕의 불길만큼이나 뜨겁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형구 사장은 꿈 하나가 더 있다고 합니다. 충북대장간이 60여 년 동안 자리했던 이곳 성남에 전통 대장간 체험관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잊혀져가는 전통문화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간절한 바람 때문이죠. 대장장이이자 문화재수리기능자이면서 체험관 관장인 정형구 사장, 굳이 농기구나 건축 공구 살 일이 없다 하더라도 충북대장간에 슬쩍 찾아 가 한 번 만나보고 싶어질 그런 ‘장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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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명석 2017.05.18 17: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문화재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대장장이분들도 있군요. 오늘 글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우리의 혼을 끊임없이 지켜가시는 훌륭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 황혜진 2017.06.15 00: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꾸준히 해오는게 쉽지않으셨을텐데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