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흙수저' 저자 황우석] 나의 인생, 나의 동국제강
[DK PEOPLE/동국DNA] 2016.09.13 14:25

 

올해로 동국제강은 창립 62주년을 맞았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발전하고 치열하게 성장해왔는데요. 철강역사의 현장 속에서 동국제강과 5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이가 있습니다. 1966년에 입사해 2007년도에 정년퇴임하기까지 동국제강에 몸을 담았고 현재까지도 동국제강 부산공장과 인연을 맺고 있는 황우석 님인데요. 최근에는 『빌려온 흙수저』라는 책을 통해 동국제강과의 인연을 한 권에 담아냈죠. 퇴직 후 제2의 삶을 활발하게 꾸려가고 있는 황우석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빌려온 흙수저』라는 책을 내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손주들이 생기면서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책을 내게 됐습니다. 수년 전, 며느리와 사위를 맞이하고 손자와 손녀들이 태어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의 히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 두마디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책에 할아버지의 삶, 우리 가족의 삶을 녹여내야겠다고 결심했죠. 한 사람이 태어나 언젠가는 눈을 감는데,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에 대해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책 제목이 특이한데요. 『빌려온 흙수저』라는 제목을 붙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 대한민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흙수저’잖아요. 지금 청년들이 그런 단어들을 써가면서 자신의 청춘과 젊음을 자조 섞인 말로 흘려 보내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의 표현에는 희망이라는 것을 찾기가 힘들죠.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빌려온 흙수저’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비록 흙수저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수저의 색깔에 굴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면 수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죠.

 

‘빌려온’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1966년 2월, 동국제강에 입사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올 때, 집에 돈이 없어 어머니께서 이웃동네에 가셔서 7천원이라는 거금을 빌려오셨습니다. 1할이나 되는 높은 이자를 쳐주기로 하고 말이죠. 그 돈이 마치 없는 흙수저라도 빌려온 것처럼 생각돼 제목을 ‘빌려온 흙수저’라고 지었습니다. 저에게는 사실 흙수저조차도 없었던 거죠.

 

 

 책을 보면 동국제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제가 1966년 2월 난생 처음으로 취업한 곳이 동국제강이었죠. 중간에 사정이 생겨 잠시 동국제강에서 떠난 적도 있지만 결국 이곳으로 돌아와 2007년 12월 31일에 동국제강에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동국제강은 삶의 ‘시작과 끝’인 셈이죠.

 

입사 이후 동국제강이 급격히 성장할 무렵, 직접 여러 공장 건설에 참여하다 보니 다양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만큼 에피소드도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까까머리 소년시절부터 동국제강과 인연을 맺게 돼 머리가 하얗게 샐 때까지 동국제강이라는 울타리에 있었으니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많겠어요. 그러니 제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국제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되었죠.

 

 책에도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동국제강에 근무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가 동국제강에 입사한 후 저를 압도했었던 한 장면입니다. 동국제강에 들어온 후 며칠 뒤 용광로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검붉은 쇳물을 봤을 때 가슴이 펑펑 뛰는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검붉은 쇳물을 보면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죠.

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가지만 신혼시절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아내와 결혼한 후 신혼시절에 동국제강에서 수산대학교(現 부경대학교) 운동장을 빌려 체육대회를 열었는데요. 그때 상품으로 받은 생활용품들이 신혼살림에 많은 도움이 됐고 새신랑인 제가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신혼을 보냈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동국제강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동료가 있다면?

 

동국제강에서 50여년 근무하며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제가 그들에게 갖는 공통된 감정이 있다면 바로 ‘고마움’입니다. 제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먼저 손을 건네주고, 힘들 때 같이 걱정해주셨던 분들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힘들 정도죠.

 

그래도 기억에 남는 동료가 있다면 동국제강에 입사했을 때 압연부에서 제품정리 작업을 같이 하고, 압연공작부에서 함께 일하며 동고동락했던 이영강이라는 친구입니다. 또 부산지방 기능올림픽 대회에 참가하며 함께 용접 기술을 연마하고, 고민거리도 많이 나누던 이종포라는 친구도 있죠. 그리고 신혼 방을 구할 때 자기 집의 깨끗한 방을 빌려주신 용호동의 김영길 형님, 서로 절친하게 지내며 경조사를 함께 했던 7인회 회원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고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책을 보면 평생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요. 끝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어릴 때 학업을 중단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한풀이로 시작한 것이 하나 둘씩 이뤄지다 보니 성취감 또한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비가 오고 난 후 산마루에 걸려 있는 무지개를 본 적 있죠? 저 아름다운 무지개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자꾸만 무지개를 좇아가는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현실에 만족, 타협하면서 도전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도전하다 보니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황우석 님에게 동국제강은 어떤 의미 입니까?

 

동국제강은 바로 ‘나의 인생’입니다. 소년 시절 동국제강과 인연을 맺은 후 결혼해 자녀를 낳고,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동국제강은 우리가족의 ‘또 하나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동국제강에서 흘린 땀과 노력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잘 키워 또 그들이 손자 손녀를 낳게 되었기 때문이죠. 동국제강에 대해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동국제강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인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수많은 회사 중에 왜 동국제강과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을까?’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인연이든지 간에 한 번 맺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인연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열과 성을 다해 좋은 결과가 맺어지도록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회사도 번영하고 자신도 함께 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자기가 노력한 만큼은 되돌아오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끝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제가 동국제강과 맺은 50년의 인연에 대해 후배들에게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동국제강 후배들의 발전과 회사의 번영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이후주 2016.09.27 11:1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인연이라는 말에 공감을 하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듯 모든 이은 연은 소중함 그 자체입니다..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연이 없다면 나의 인생 또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어디에서든 만나는 소중한 연을 놓지 않도록 배우며 반성하며 지내는 유유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